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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ly 6, 2020

[여성, 정치를 하다](5)극단주의자 총탄에 맞선 용기…아동·여성 권리 신장 위해 몸 던지다 - 경향신문

apakabarharus.blogspot.com
장영은 |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
2020.07.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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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랄라 유사프자이

2017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 진학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운데)는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언젠가는 말랄라가 베나지르 부토의 뒤를 잇는 여성 정치인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지만, 그는 이미 열한 살에 정치에 뛰어들었다. 사진은 2018년 가족들과 함께 파키스탄을 다시 방문한 말랄라.

2017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 진학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운데)는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언젠가는 말랄라가 베나지르 부토의 뒤를 잇는 여성 정치인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지만, 그는 이미 열한 살에 정치에 뛰어들었다. 사진은 2018년 가족들과 함께 파키스탄을 다시 방문한 말랄라.

“베나지르는 내가 두 살 때부터 망명 중이었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그녀 얘기를 아주 많이 들어서 그녀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우리가 다시 한 번 여성 지도자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베나지르 덕분에 나 같은 여자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고 정치인이 될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의 롤모델이었다. 베나지르 부토는 독재의 종식과 민주주의의 시작을 상징했고, 세계에 희망과 강인함의 메시지를 보냈다. (…) 그녀의 사망을 확인했을 때, 내 가슴이 내게 말했다. 너도 나아가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겠니?”

2007년 12월27일, 파키스탄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반(反)정부 운동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었다. 선거의 주도권은 두 달 전 망명지 런던에서 돌아온 베나지르 부토가 쥐고 있었다. 베나지르 부토는 이미 1988년 35세의 나이로 파키스탄 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이슬람 국가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그렇지만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군부 쿠데타에 의해 해임되었다.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낸 부토는 1993년 재선에 성공하며 총리로 복귀했지만, 험로를 헤쳐나가야 했다. 그녀는 대통령 파루크 레가리의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3년 만에 중도 하차를 결정하고 해외로 망명을 떠났다. 파키스탄으로 돌아갈 시간만을 기다렸다.

2007년 10월, 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부토는 정치 복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해 12월27일 열린 선거 유세 집회에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되찾자.” “우리는 극단주의와 무장세력을 국민의 힘으로 물리칠 것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지지자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연설 직후, 부토는 암살당했다.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이었던 무샤라프는 부토 암살의 배후로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대의 최고 군사 지도자인 바이툴라 메흐수드를 지목하며, “파키스탄 탈레반 지도자와 그의 동료가 이 공격을 모의한 전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탈레반, 학교 폭파·여성 살해
폭력에 맞서 직접 폭로 결심
“탈레반이 내 교육권 빼앗아”
11세에 방송 출연 비판 나서
베나지르 부토 암살 계기로
‘여권투쟁’ 내면의 소리 들어

열 살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베나지르 부토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말랄라의 고향 스와트에 탈레반이 들이닥쳤다. “탈레반이 우리 계곡에 들어왔을 때 나는 열 살이었다.” 평화롭고 온기 넘쳤던 마을은 이내 공포에 휩싸였다. 탈레반은 서구 문명이 이슬람 문화를 타락시킨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텔레비전과 DVD, CD를 거리에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불에 태웠다. 여학교를 모두 폐쇄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처음 폭파된 학교는 마타에 있는 공립 여자 초등학교였다. “그 후 더 많은 폭탄이, 거의 매일 터졌다.” 학교가 하나둘씩 폭파되었다. 탈레반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보복 살해를 당하거나 참수되었다. 그런 와중에 부토마저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2008년 1월17일, 부토 암살 용의자 다섯 명 가운데 한 사람인 15세 소년 아이테자즈 샤가 체포되었다. 용의자가 알 카에다 및 탈레반과 밀접하게 연계해 활동하고 있는 무장단체 지도자 바이툴라 메흐수드의 지시로 부토 암살에 가담하게 되었음이 밝혀졌다. 파키스탄의 민주화를 희망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좌절했다. “베나지르도 죽을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아.”

그러나 말랄라에게 아랍어로 코란을 가르치던 선생님 한 사람은 부토의 암살 사건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그 여자가 죽은 것은 매우 잘된 일이다.” “살아 있을 때 그 여자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이슬람 율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으니까, 만일 살았더라면 큰 혼란이 있었을 거다.” 말랄라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을 어떻게 저토록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 있을까? 대체 무슨 이유로 이슬람 율법을 왜곡하면서까지 암살자를 옹호하는 것일까? 인권침해를 정당화하고 폭력을 미화하는 것은 말랄라가 믿고 따르던 이슬람 교리와는 전혀 달랐다. 말랄라는 부토가 총리가 되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파키스탄의 변화를 이끌었던 역사가 ‘이슬람 교리’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코란에는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하루 종일 집에서 일해야 한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말랄라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딸에게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어휘의 글자 그대로 뜻만 배우도록 해라. 그 선생의 설명이나 해석은 잊고 오직 신이 하는 말씀만 배우는 거야. 신의 말씀은 신성한 메시지고, 너는 자유로이 독립적으로 그 말씀을 해석하면 된다.” 옳은 말이었다. 아랍어로 코란을 가르치며 혐오 발언을 내뱉는 사람도, 원리주의를 내세우며 악행을 저지르는 탈레반도 이슬람 종교를 대표하는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폭력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한 때였다. 그러나 탈레반의 폭력이 극악무도해질수록,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말랄라는 총을 든 탈레반에게 맞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그들의 테러 행위를 직접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만일 한 남자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면, 한 소녀가 그것을 바꾸는 건 왜 못하겠는가?”

2008년, 열한 살 말랄라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뉴스 채널인 Geo와 BBC 우르두어 토크쇼에 연달아 나갔다. 방송 출연을 망설였지만, “파키스탄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이 방송을 들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 말랄라는 열변을 토했다. “어떻게 감히 텔레반이 교육받을 권리라는 내 기본권을 빼앗는 건가요?” 방송 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학교는 계속 파괴되고 있었다. 2008년 10월7일 밤, 멀리서 연쇄적으로 폭발음이 들려왔다.” 복면 무장세력들은 상고타 수녀원 부속여학교와 남학교인 엑셀시어 칼리지에 사제 폭발 장치를 설치하고 학교를 폭파시켰다. 심지어 탈레반은 “상고타는 기독교를 가르치는 수녀원 학교이고 엑셀시어는 남녀 공학이기 때문이라고” 사실관계와 맞지도 않는 범행 동기를 밝히기까지 했다. 2009년 1월에는 전문 무용수로 활동하던 샤바나라는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탈레반은 여자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행위가 “비도덕적이기에 죽어 마땅하다”고 버젓이 성명을 발표했다.

말랄라의 절망감은 깊어졌다. 마침 BBC 라디오 페샤와르 특파원이 탈레반 치하 생활에 대해 일기를 쓸 여교사나 여학생을 찾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난 안 돼요?”라고 물었다. 말랄라는 일주일에 한 번씩 BBC 우르두어 웹사이트에 일기를 올리기로 한다. 2009년 1월3일, ‘나는 두렵다’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굴 마카이라는 필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말랄라의 일기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 못지않다는 평가도 받았다. “나는 펜과 그 펜에서 나오는 글이 기관총이나 탱크, 헬리콥터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닐 수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말랄라는 더욱 확신을 가졌다. “우리가 말을 할 때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배우고 있었다.”

(5)극단주의자 총탄에 맞선 용기…아동·여성 권리 신장 위해 몸 던지다

(5)극단주의자 총탄에 맞선 용기…아동·여성 권리 신장 위해 몸 던지다

(5)극단주의자 총탄에 맞선 용기…아동·여성 권리 신장 위해 몸 던지다

2012년 10월 테러를 당했지만 말랄라는 기적적으로 회복한 뒤 아동인권운동가의 삶을 되찾았다. 브라질 상파울루 등 세계 각지에서 아동인권에 대한 강연을 했고,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만났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파키스탄계 학교를 방문하고, 에티오피아의 교육운동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연대했다(위 사진부터).

2012년 10월 테러를 당했지만 말랄라는 기적적으로 회복한 뒤 아동인권운동가의 삶을 되찾았다. 브라질 상파울루 등 세계 각지에서 아동인권에 대한 강연을 했고,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만났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파키스탄계 학교를 방문하고, 에티오피아의 교육운동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연대했다(위 사진부터).

“말할 때 얼마나 강해지는지”
외국 언론에 ‘일기’ 올려 반향
하교 때 총탄에 쓰러져 대수술
영국 정착 아동인권운동가로
‘개도국 아동·여성 교육’ 주창
유엔 연설로 정치활동 구체화

한편 탈레반의 폭주는 더욱 심해졌다. 2009년 1월14일, 말랄라가 다니던 학교는 문을 닫았다. 일기만으로는 부족했다. 말랄라는 ‘뉴욕타임스’가 제작 중이었던 다큐멘터리 <스와트밸리에서 수업은 끝나다>에 참여한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말랄라의 신변을 걱정하면서도 “아무리 탈레반이라도 어린아이는 죽이지 않아”라는 말로 위안을 삼으려 했다. 말랄라의 할머니는 텔레비전에서 손녀를 볼 때마다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신이시여. 제발 말랄라를 베나지르 부토 같은 사람으로 인도하시되 부토의 짧은 목숨은 주지 마소서.” 가족들은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이었다.

2009년 5월, 말랄라는 ‘파워 99’라는 라디오 방송국과 인터뷰를 했다. 말랄라의 인지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2011년 10월에 말랄라는 국제아동인권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펀자브 주지사의 초대를 받아 교육행사에서 연설을 했다.

2011년 12월20일에는 총리 관저에서 상을 받은 후, 언젠가 정치인이 되면 스와트에 여자대학교를 만드는 일을 “직접 하겠어”라고 특별한 포부를 담아 자신의 미래를 설계했다.

그러나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2012년 10월9일, 말랄라는 수업을 마치고 학교 버스를 탔다.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버스 뒤편으로 다가온 한 남자가 검은 권총으로 말랄라를 연달아 쏘았다. 혼수상태에 빠진 말랄라는 영국으로 이송되어 여러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열흘 후, 말랄라가 깨어났다.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안면신경과 왼쪽 고막이 크게 손상되어 장기 재활치료가 필요했다. 말랄라 가족은 파키스탄을 떠나 영국 버밍엄에 정착하기로 결정한다. 1년 동안의 회복 기간을 거친 후, 말랄라는 아동인권운동가의 삶을 되찾았다.

2013년 7월12일, 말랄라는 자신의 열여섯 번째 생일에 유엔에서 연설을 했다. “극단주의자들은 책과 펜을 두려워합니다. 교육이 그들을 겁먹게 합니다. 그들은 여성을 두려워합니다. (…) 폭력과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시고, 개도국 여성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말랄라는 유엔에서 기립박수를 받았지만, 고국 파키스탄에서는 “명성에 안달난 십대 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말랄라는 개의치 않았다.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명성’에 걸맞은 실천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했다. 말랄라는 2013년 말랄라재단을 설립하고, 전 세계 어린이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구체화시켰다. 이듬해 말랄라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되었다. 대학 진학도 착실하게 준비했다.

2017년 옥스퍼드대학교에 입학한 말랄라는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2020년 6월 무사히 졸업했다. 말랄라가 언젠가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부토의 뒤를 잇는 여성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랄라재단 운영이 정치적 활동을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말랄라는 열한 살에 이미 정치에 뛰어들었다. 2008년 방송에 출연해서 탈레반을 비판했을 때부터, 2009년에 자신의 일기를 BBC 웹 사이트에 올렸을 때부터, 죽음의 문턱 앞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후 유엔에서 연설을 하며 아동과 여성의 교육권 보장을 호소했을 때부터, 말랄라는 정치를 하고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총으로 저의 목표를 바꾸고 야망을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나약함과 두려움, 절망을 버리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말랄라의 정치적 야망은 건강하다. 용기 있는 젊은 여성 정치인의 목표가 달성되길 바란다.

(5)극단주의자 총탄에 맞선 용기…아동·여성 권리 신장 위해 몸 던지다


■장영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를 함께 썼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썼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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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7, 2020 at 04: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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