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s

Friday, November 13, 2020

학벌사회, 순혈주의와 근친교배 - 뉴스플러스

apakabarharus.blogspot.com

 필자의 중학교 시절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교육 수준에 따라 계층화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필자가 그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당시 부족한 환경에서 나름 공부를 잘 했던 필자의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학벌사회’로 계층화 혹은 수저의 대물림이 교육을 통해서 이어진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다. 명문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쉽고, 배우자 선택에 유리하며, 경제적 수준도 높아 사교육을 통한 자녀들의 학벌 대물림도 용이하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의 76%가 학력에 의해서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으며, 학력에 의한 불평등은 94%로 31%의 종교와 64%의 출생지에 비해 높게 느낀다. 따라서 대학을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비율은 86%,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와 편입을 해야 한다는 비율은 70%이다. 참고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비율은 36%이다.

%B4ٿ%EE%B7ε%E5_(1).jpg

강남구 서울대 합격률 무려...

신분 사회가 아닌 오늘날 민주 사회에서는 누구든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성공할 수 있고 (자신의 수저 색깔을 바꿀 수 있고), 그것을 가장 합리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이 교육 시스템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오히려 역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에 부합하는 것 같다.

 필자의 KAIST 입학처장 경험에서도 KAIST 입학생들의 소득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높은 소득은 조기 사교육을 가능케 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의 과학고와 영재고 진학과 함께 KAIST 입학으로 이어진다. 당시 필자도 그 흐름의 방향을 개선하고자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거대한 흐름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일개 대학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고소득층이 많이 사는 강남구의 서울대 합격율은 다른 구와 비교해 최대 21배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혹자는 대학 평준화를 주장하고, 심지어 대학 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에 책임을 물어 서울대 폐지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명문대 졸업생들의 능력, 과연?

 이 글에서 필자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사교육과 사회에서의 성공 사이에 있는 ‘대학 교육’ 문제이다. 사교육과 명문대학 입학과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사교육과 사회에서의 성공 간의 높은 상관관계에 대해서 필자는 부정적이고 더 나아가 높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명문대학들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학생들이 똑똑하고 성실하며, 명문대학들이 제공하는 교육의 질이 높고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연마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월등한 기량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면 명문대학 혹은 학벌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명문대학 졸업생들의 능력과 기량에 크게 공감하지 않으며, 출신 학교 이름만을 배경으로 혹은 선후배 연줄로 오히려 정당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교육의 질과 졸업생의 능력에 대해서 우리 사회에 충분한 신뢰를 못 준 명문대학들의 책임도 크다는 생각이다.

 과거에는 대학 교육의 수준과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가 낮아 대학 입학 그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명문대학들도 교육의 질과 무관하게 그 이름만으로도 위상이 높아 졸업생들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했지만, 오늘날까지 명문대학 졸업생들에게 무조건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급속하게 다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단순 도구일 뿐 (그마저도 시대에 뒤떨어지고 왜곡되어 있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중고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대학원에서의 연구 또한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입학이 졸업을 보장하는 우리 대학의 현실에서 사회에서의 기량과 능력이 중고등학교 성적으로 가름 될 수 있다는 가정은 더욱 시대착오적이다.

대학 간 수준차이 크지 않아

 오늘날 학부 교육의 경우 대학 간의 수준 차이는 크지 않다. 오히려 명문대학들의 경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지만, 입시 공부에 지쳐 대학에서는 쉬고 싶어하거나 이미 성공한 사람처럼 샴페인을 터뜨리는 경우 혹은 입학만을 목적으로 원하는 전공을 포기해 전공 공부에 흥미가 없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또한 교수들은 대학원생들과의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학부생 지도와 강의에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이에 반해 비 명문대학들의 경우, 대학원생들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적어 교수들은 학부생들과 더 많이 접촉하고 학부 강의에 집중하며 학부생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또한 대학 입학 후 늦게 철들어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된 학생들이 새롭게 시작된 전공 공부에 매진하는 경우도 많다. 즉, 대학에 들어오면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시 시작된다. 게임의 룰이 바뀌고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학 교육이 정립된 오늘날, 과거와 같이 대학 이름만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사회, 학벌사회는 점점 발 붙일 곳이 없고 없어야 한다. 중고등학교 성적으로 결정되는 대학 이름보다 대학에 들어와 쌓은 전공 실력과 다양한 경험들을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학계에 존재하는 학벌의 병폐 가운데 대표적인 예로 ‘정통파’ 혹은 ‘순혈주의’가 있는데, 학부와 대학원을 같은 대학에서 나오는 경우 혹은 높은 모교 출신 교수 비율 등을 일컫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도 당연시되고 때로는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물론 과거의 대학 현실에서 그 불가피성은 어느 정도 이해된다.), 미국에서는 inbreeding, ‘근친교배’, 라는 매우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엄격히 피하고자 하는 사항이다. 

학벌사회의 이면

 명문대학들의 자랑거리가 더 이상 입학생들의 고등학교 내신 등급과 수능 점수이 아니고 수준 높은 강의, 치열한 학습 풍토, 그리고 뛰어난 연구 성과와 높은 대학원 진학율, 더 나아가 올바른 사회 기여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쩌면 학벌사회의 근저에는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보다 명문대학들의 이름 뒤에 숨어버린 속 빈 강정과 같은 공허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앞으로 대학 교육이 더욱 더 제자리를 잡아가 명문대학 입학보다 졸업이 더 어려워지고, 어느 대학에 진학하던 그 대학에서 최선을 다해 전공 실력을 쌓은 사람들이 더 인정받고, 대학 입시의 목적이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 맞는 대학 선택의 잣대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사회가 치졸한 학벌사회의 틀을 떨쳐버리고, 명문대학들이 뛰어난 실력과 능력으로 진정 존경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대학은 계층 차별화의 도구가 아니고 모든 국민들의 지적 수준과 직업 소양을 향상시키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승섭 카이스트 교수

Let's block ads! (Why?)




November 13, 2020 at 04:22PM
https://ift.tt/38FAI5l

학벌사회, 순혈주의와 근친교배 - 뉴스플러스

https://ift.tt/3cWo3JE

No comments:

Post a Comment